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조선군(일본 제국) (문단 편집) == 임무 == 조선군의 임무는 한반도 주둔 및 치안 확보, 대러시아-소련 방비 그리고 대륙정책 및 대륙 침략 관여와 대비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. 치안 유지 이외에 대외적인 조선군의 1차적인 임무는 [[만주]] 및 [[소련]] 국경의 방어였다. [[만주사변]]과 [[만주국]]이 성립하면서 [[만주]]로부터 대규모의 침략을 받을 위험은 없어졌지만 [[만주]]를 거점으로 한 독립군의 활동은 [[1920년대]] 이후로도 수시로 있었으므로 이에 대한 방어의 필요가 있었다. 또한 소만국경에서도 [[1935년]]부터 분쟁이 빈발하여 소련과의 마찰 위기가 상존했으며, 한소국경에서도 긴장이 고조되어 [[장고봉 사건]]이 발생하는 등 위기가 고조되자 [[1930년대]] 후반부터는 이에 대한 대비가 강화되었다. 그 외에 병력이 부족한 [[관동군]]을 지원하여 [[중국]]에 대한 침략활동에 나서기도 했다. [[만주사변]]을 일으킨 [[관동군]]은 본국에 병력 증원을 요청했는데 당시 재정부족에 시달리던 본국 정부는 침략의 확대를 거부했다. 이에 [[관동군]]에 동조한 조선군 사령관이 독단으로 20사단 병력을 재편성해 조직한 1개 여단을 월경시켜 [[관동군]]의 지휘를 받도록 했으나, 이러한 독단적인 조치에 대해서 본국에서는 아무런 처벌도 가하지 않았다. 도리어 전쟁이 확대되면서 1개 여단이 증파되었고, 20사단 사령부까지 나갔다. 그리고 20사단은 [[중일전쟁]]의 확대로 아예 본격 참전 테크를 타게 되며, [[1939년]] 말이 되어서야 소집 해제로 조선에 복귀하였다. 이뿐 아니라 조선군은 [[만주사변]] 발발 시점에서 독자적으로 [[간도]]를 침공하려고 획책하기도 했다. 이 당시 [[간도]]는 [[장학량]] 정권의 지배하에 있는 변두리 지역이었는데, [[관동군]] 주력은 [[만주]]의 핵심을 제압하느라 이런 변두리까지 손을 뻗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. [[간도]]는 조선인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항일 게릴라의 주요 근거지였던 탓에 이 기회를 타서 조선군이 직접 토벌하려 했던 것이다. 하지만 전선 확대를 꺼리는 중앙 정부의 견제로 인해 이 출병은 성사되지 못했고 곧 [[만주국]]이 수립되면서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. 이후 [[태평양 전쟁]]이 발발해 전쟁 스케일이 커지자 다수의 전투부대가 남방전선으로 차출되었다. 여기에 전황이 점점 악화되면서 미군의 일본 본토 및 한반도 침공 가능성이 커졌다. [[1945년]]에는 본토결전을 대비한 [[결호작전]]을 위해 [[일본군]]의 구조가 개편되면서 조선군은 해체되고 [[한반도]]는 17방면군 예하 조선군관구에 속하게 되었다. 여기서 17방면군은 전선에서의 전투를, 조선군관구는 후방의 지원 업무를 담당하며 [[사령관]]과 [[참모장]]은 겸임이었다. [[태평양 전쟁]] 말기에는 소련의 침공 위험이 높아졌다. 그 결과 17방면군의 주력은 한반도 중부 및 남부 지대에서 미군의 침공을 대비하는 한편 [[한반도]] 북부 지방에서의 작전권한은 17방면군으로부터 [[관동군]]에게 넘어갔다. 이후 한반도 전역에서 부대를 새로 편성하고 장비와 병력을 충원하며 방어 준비를 하던 중 [[히로시마·나가사키 원자폭탄 투하]]라는 핵펀치를 얻어맞고 [[만주 전략 공세 작전]]으로 마지막 희망인 관동군마저 소련군에게 무참하게 박살이 난 후 일본 본국이 손을 들면서 조선군이 가열차게 건설한 방어시설들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